대림절 3번째주일이고 3번째주일은 사순절도 그렇고 대림절도 마찬가지로 자선주일로 지낸다. 교회에서 성탄이나 부활대축일을 준비하는 기간에 자선주일을 정해서 지내는 이유는 예수님께로 가는 그 길에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이 자선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회개이고 둘째는 자선이라는 행위를, 복음을 통과해야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수있다라는 진리를 깨우쳐주기 위함이다.
세례자요한이 세례를 주고 있을 때 사람들이 몰려가서 세례를 받을 때, 바리사이 사두가이파 사람들도 몰려왔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이 이러 얘기를 했다. "너희들이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 회개라는 것과 자선이라고 하는, 선행이라고 하는 이 행위는 동전의 앞과 뒤와 같다. 회개했다고 하면서 행실로 증명하지 못하면 회개한게 아닌거다. 그래서 반드시 회개 뒤에는 자선이라는 게 따라와야 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평소에 내가 도와주고 싶었던 이웃들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돌아보고 선행을 베풀수있는 그런 시간을 가져야된다.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는 거다. 성체를 받아모신다는 것은 성체를 모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뜻은 사랑이다.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사실 그분을 받아들인게 아닌 거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 하나를 남겨주신거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신앙생활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레위기 신명기에 나오는 수많은 율법 조항들을 다 지켜야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만 지키면 된다. 얼마나 신앙생활이 쉬워진건가? 간단해지고 확실해진거다. 그 하나가 "사랑하라." 사랑하라는 말을 잘 살펴보면 신비로움이 담겨있다.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라고 하면 내가 마치 희생하라는 것처럼 생각되는데 잘 생각해보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나늘 사랑하는 거라는거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웃을 용서하는게 결국은 나를 용서하는 거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웃을 위하는 게 나를 위하는 거다. 사실은 그렇다.
1998년도에 하버드 대학에서 아주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학생들을 모집해서 실험을 했는데, 마더데레사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여줬다. 보여주기전에 체혈을 다해서 건강체크를 했다. 영화를 보여주고 나서 다시 체혈을 했다. 전과 후를 비교해보니까 다른점이 나타난 거다. 전에 피에는 없었던 면연력 항체가 50%가 증가 된 거다. 자기가 용서하고 사랑하고 희생한 것도 아니다. 데레사 성녀가 그렇게 한 삶의 영화를 봤을 뿐인데도 내 몸의 변화가 일어난 거다. 그 체험결과를 바탕으로 해서 신조어가 생겼다. '데레사 효과'라는. 이웃에게 봉사하고 희생하고 사랑하는 그 행위를 통해서 변화되는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변화를 일컫는 말이 된거다. 비슷한 말이 '켈퍼스 하이'란 말이 또 생겨난 거다. 과학적으로 증명한 데레사 효과의 실험. 사람은 사랑하고 봉사하고 나면 오랜기간동안 그 심리적인 충만함, 그 만족감에 행복해한다는 거다. 그래서 그 기간동안에 자기 몸과 심리 상태가 변화가 된다는 거다. 과학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증명이 되는 거다. 여러분도 많은 비슷한 체험을 했을거다. 어디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는데 마음이 너무 뿌듯하고 평온하고 행복하고. 그것은 그 희생과 봉사의 시간을 통해서 내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난거다. 그러니까 결국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웃에게도 그 효과가 전해지는 거지만 결국은 나의 변화, 내가 행복해진다. 일본의 의사가 쓴 책 중에 '대뇌 혁명'이라는 책이있는데, 그 책에도 비슷한 실험결과가 나온다. 사람 몸에는 여러가지 호르몬이 분비가 되는데, 내가 미워하고 진짜 원수같이 생각하는 증오심이 생겨나면 내 몸속에서 아드레날린 계통의 호르몬이 분비가 된다. 내가 너무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밤잠을 못자고 머리가 막 빠쭉삐쭉서고 그런 이유가 뭐냐면, 그러한 내 몸을 헤치는 호르몬이 분비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 때 나오는 나오는 호르몬이 맹독성을 가진 방울뱀의 독소보다 8배가 더 독하단다. 아주 미량으로 나오기 때문에 치사량은 아니다. 그 아주 미량의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머리가 삐쭉삐쭉 서고 가슴이 뛰고 밤잠 못이루고 밥 맛이 없고 그렇다. 미워하는 그 마음으로도 내가 죽어가는 거다.
반대로 사랑하게 되면 내 몸속에서 다른 호르몬이 분비가 되는거다. 그게 엔돌핀 계통의 호르몬이다. 몸도 마음도 행복해진다. 우리 몸을 창조하고 만드신 하느님이 하라고 하신 사랑의 계명은 결국 우리를 살리기 위한 행복하게 하기 위한 계명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 회개이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계명을 받아들이는 거 이렇게 살아가는게 나에게 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게 그게 진정한 의미의 회개다.
대림시기는 세례자요한을 통해서 회개하는 시간이다. 회개해야 믿을 수 있는 거다. 회개라는 것은 예수님의 받아들이기 위해서 길을 닦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닦는 것, 그게 세례자요한 하신 일이고, 그게 바로 회개다. 그 길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진정으로 나에게 행복한 삶이 된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거다. 그런 우리들도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회개의 행실로 해야한다. 그 행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 자선주일을 보내고 있는데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그러한 진정한 회개가 이 대림시기 동안에 이루어지게 바라고 오늘 미사중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회개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 12월 11일 주일 [(자)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제1독서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35,1-6ㄴ.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제2독서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5,7-10
7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11
그때에 2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생활정보 꿀팁 > 삶을 인도하는 빛 (미사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망하지 않을 용기 (0) | 2022.12.22 |
---|---|
의로운 사람의 특징 (0) | 2022.12.22 |
예수님을 만나려면 (0) | 2022.12.22 |
나는 개밥그릇인가?, 보물인가? (0) | 2022.12.06 |
미나, 탈렌트 (0) | 2022.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