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번까지라도 용서해야된다. 그러면서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면서 비유를 들려주셨다. 비유를 곰곰히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일만달란트 빚진 사람에게 그 빚을 탕감해주었다. 그런데도 동료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을 빚졌는데, 탕감에 해주지 못하고 감옥에 가두었다.
일만달란트는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치면 6조원이라고 할 수 있다. 6조원이란 말은 빚을 갚는게 불가능하다라는 뜻이다. 100데나리온은 천만원이다. 천만원은 갚을 수 있는 값이다. 우리는 일만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이다. 이웃이 우리에게 아무리 잘못한다 할 지라도 천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일만달란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오늘 이 비유에 나오는 일만달란트 탕감해주는 사람은 하느님이고, 탕감받은 사람은 우리들이다.일만달란트는 예수님의 피, 생명 목숨값인거다. '하느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그 외아들을 내주시고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셨다.' 하느님은 우리 빚을 탕감해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해주기 위해서 당신 외아들의 목숨을 내어놓은거다. 그게 일만 달란트인거다. 우리가 영원히 갚는다하여도 갚을 수 가 없는 빚인거다. 그렇게 빚진사람이 형제의 잘못을 왜 용서해줄 수 없겠느냐? 깨달아야한다는거다.
사실 그걸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일만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이 자기 동료에게 꿔준 백데나리온을 받겠다고 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죄는 아니다. 빌려준 것을 돌려받겠다라는 거니까. 100데나리온을 받으려고 한 것이 잘못은 아니잖아요. 빌려준것을 받으려고 하니까. 그런데 하느님은 그것이 잘못된 거다 하시는 거다. 그 해답은 그 사람의 신분이 종이었다는 사실이다. 종은 자기의 가진 것 지위가 없다. 사실은 100데나리온을 빌려준 그 100데나리온도 주인에게 빌려서 준 거다. 그러니까 친구한테 빌려준 그 100데나리온 그것도 사실은 주인거다. 그러니까 친구에게 빌려준 그 100데나리온도 탕감해준거다. 그런데 이사람은 임금에게, 주인에게 탕감받은 그 돈중에 빌려준 100데나리온을 자기 것으로 생각한거다. 그래서 아까워한거다. 그래서 미운거다. 안갚으니까. 그래서 이 종은 자기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망각한거다. 그게 죄인거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주셨고 구원해주셨다. 당신 목숨바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생명주고 구원해주지 않으셨으면 존재도 못했다. 생명을 받은 우리가 이웃의 죄를 용서해주지 못한 거 자체가 죄인거다. 왜냐하면 100데나리온이 자기것으로 생각하니까, 그래서 용서를 내가 해주어야한다, 내가 희생한거다 생각한 거 자체가 탕감받은 종의 신분으로서 갖을 수 없는 생각이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한 것처럼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일곱번이라도 무조건 용서해야한다. 그말은 다시 뒤집어놓고 보면 우리가 일흔일곱번 하느님께 잘못했더라도 하느님은 끝까지 다 용서해주실분다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하느님의 자비심 또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묵상할 수 있는 말씀이다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왔고, 또 예수님 덕분에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의 신분을 갖게 된 거다. 그게 예수님의 목숨값인거다. 일만달란트. 그걸 생각하고 있는다면 100데나리온 그것도 하느님것이니까 아까워하지 말아야한다. 하느님거니까. 내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용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거다. 절대 내가 용서해주는게 아닌거다. 그 100데나리온도 일만달란트에 속해 있는거라고 생각해야되는 거다.
제1독서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25.34-43
그 무렵 25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입을 열어 이렇게 기도하였다.
34 “당신의 이름을 생각하시어 저희를 끝까지 저버리지 마시고
당신의 계약을 폐기하지 마소서.
35 당신의 벗 아브라함, 당신의 종 이사악, 당신의 거룩한 사람 이스라엘을 보시어
저희에게서 당신의 자비를 거두지 마소서.
36 당신께서는 그들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37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저희는 오늘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38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희생 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을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39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40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정녕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41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의 얼굴을 찾으렵니다.
저희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42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43 당신의 놀라운 업적에 따라 저희를 구하시어
주님,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8,21-35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생활정보 꿀팁 > 삶을 인도하는 빛 (미사강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직 예수님만이 죽으셔서 할 수 있는 일은? (0) | 2023.04.05 |
---|---|
사랑의 효도 (0) | 2023.03.24 |
육신과 세속과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방법 (0) | 2023.03.24 |
사순절의 의미가 뭘까? (0) | 2023.03.24 |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방법 (0) | 2023.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