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게 도대체 뭘까?
행복이라는게 도대체 뭘까? 다들 행복해하고 싶어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행복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이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행복은 욕구가 충족될 때 느껴지는 거다. 꼬마 아이가 울고 있는데 그 꼬마 아이가 우는 것은 불행하기 때문에 우는 거다. 그 우는 아이에게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면 울음을 그친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먹고싶은 욕구가 채워지니까 행복한 건데, 그 행복은 5분짜리 행복인거다. 우리는 5분짜리 욕구를 채워가면서 행복을 추구하는데 그 행복은 늘 내 곁에서 또 사라져버린다. 평생을 쫓아가는 삶을 사는데 결국은 남는 것은 빈손 빈 마음이다. 불행하다.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니까 행복하지 않은거다. 그러면 평생 행복을 쫒아 사는데 행복하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거다. 원래 그런거겠지하고 포기해버리면 영원히 행복은 찾을 수 없는 거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을 쫒아왔는데 지금까지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내가 그 행복을 쫓은 그 방법이 문제가 있는거다. 나는 행복하고 더 이상 바랄게 없고 충족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 말을 듣지 않겠죠
어떤 분이 캥거루를 보고 '야 ,이거 참 신기한 동물이네, 이거를 잘 길러가지고 팔아먹으면 돈이 좀 되겠다.'캥거루를 야생에서 한마리 잡아와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날 가보니까 캥거루가 없어진거다. '야 이놈이 내가 생각했던 거 보다 점프를 잘하나보다.' 그리고 또 몇날몇일 울타리를 3m로 높였다. '이거는 뛰어넘지 못하겠지.' 그러고 또 야생에서 캥거루를 잡아다가 우리안에 가둬놨다. 그 다음날 가보니까 또 캥거루가 없어졌다. '야, 이거 캥거루가 이 높은 울타리를 뛰어넘는구나. 내가 과소평가했구나.' 그리고 울타리를 5m로 올렸다. '이거는 못 넘겠지' 그리고 또 한마리를 잡아다가 넣어두었는데 그러고 다음날 또 없어진거다. '신기한 동물이구나. 얘는 울타리에 넣어 두어서 기를 수 없는 동물이구나. '포기한 건다. 사실을 알고보니까 울타리만 높였지 드나드는 문은 잠그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다. 울타리만 계속 높이는 그 어리석은 농장주인일지도 모른다. 그 행복이라는 그 캥거루가 늘 도망칠 수 있는 문은 안 잠그고 계속 울타리만 높인 거다. 결국에는 허무하게 되는거다.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가 명작을 남겼는데, 그 내용은 다 알다시피 간단하다. 노인이 동네사람들이 "당신은 이빨빠진 호랑이고 , 발톱빠진 사자다."놀리는 거다. 자기가 아직 살아있다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서 배를 몰로 먼 바다로 떠난다. 그리고 몇날 몇일을 고생하면서 큰 물고기를 잡게 된 거다. 그 물고기가 너무 크니까 제압이 안되었다. 그 물고기가 끌고가는 대로 며칠을 끌려다닌거다.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고 손은 다 헤어지고, 결국은 그 물고기를 잡고 그 작은 배 위에 올릴려고 하니까 물고기가 너무 커 올릴 수가 없는거다. 결국은 그 배 옆에다 물고기를 묶어 가지고 육지로 돌아오는 거다. 육지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떼가 나타난거다. 그 상어가 몇날 몇일을 고생해서 가져온 그 큰 물고기를 다 뜯어먹은거다. 노를 가지고 상어를 치고 싸웠는데 다 뜯어먹혔다. 육지로 돌아오니까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거다. 이 헤밍웨이는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인생은 이와같은 거다. 내가 평생을 노력해서 얻어온 그 행복이라는 것은 결국 이 큰 물고기처럼 다 사라지고 허무한거다. 인생은 그런거다. 이 책을 쓰고나서 그런 얘기를 했다. '내 영혼은 끊어진 필라멘트같다' 명성을 얻고 부를 얻었지만 그 마음은 허무한거다. 그 영혼은 암울한거다. 그래서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와 같다.' 필라멘트가 전구에 붙어 있어야 밝은 빛을 비출 수 있는데, 끊어져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자기 인생이 그렇게 허망하고 허무하다. 평생 쌓아온 그 명성과 부가 아무 소용이 없다. 내 욕구를 충족해주지 못했다. 결국 그 책을 쓰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엽총을 쏴버렸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데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틀린거다. 우리는 구체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면 행복할 거다. 인생이 성공할 거다. 그렇게 믿고 그 육체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간다. 채우면 또 욕망이 생기고, 채우면 또 다른 욕망이 생기는 거다. 결국 울타리만 높이 쌓고 잡아놓은 캥거루는 사라져버리는거다. 목숨걸고 잡아놓은 그 큰 고기가 다 사라져버리는 거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거다. 왜 그런건가? 행복을 추구하는 그 방법이 틀린거다. 예수님은 그 틀린 방법을 깨우쳐주셨고,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여러분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 행복이라는 복을 잡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살아왔는데 잡으셨나요?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마라. 그러한 것은 이방인들이나 찾는거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입고 그 육체적인 욕구를 채우는게 행복인것처럼 살아 왔다. 예수님이 그러한 것은 이방인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찾는거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나머지 것도 곁들여서 받게될거다. 이 육적인 욕구를 위해서 평생 자기 인생을 투자하지 마라. 하느님의 의, 영혼의 욕구를 채우는데 노력을 해야된다. 먼저, 하느님의 의, 하느님의 뜻, 영혼의 욕구를 채워야 육적인 욕구도 덩달아서 채워지는거다. 육적인 욕구만 채우려고 하면 영적인 욕구는 고갈되어있는거니까 결국 육적인 욕구를 가지고는 사람은 충족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걸을 알고 있죠. 어린아이들도 다 알죠 그런데 믿지를 않죠 믿지를 않으니까 시도를 안하는거다. 바오로사도는 이 로마서 14장 17절에 이렇게 이야기하셨어요. '하느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다.' 하느님나라가 행복이라고 한다면 행복은 먹고 마시는 게 아니다.' 육적인 욕구를 채우는 게 그게 행복이 아니다. 그건 허망한거다. 하느님 나라는 성령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기쁨과 평화이다. 참된 행복이라는 것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기쁨과 평화이다. 하느님의 의를 구하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게 행복이고 하느님 나라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인간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 이 사람의 욕구가 신비로운거다. 육적인 욕구를 채우면 영혼의 욕구는 고갈되는데, 거꾸로 영혼의 욕구를 채우면 육체의 욕구가 채워진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다. '하느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도 받을거다.'그런데 육적인 것을 먼저 채우면 이것도 고갈되고 이것도 고갈되니까 헤밍웨이처럼 엽총으로 쏘는 결과가 생겨난다. 영혼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한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한다. 영혼의 욕구를 채우는게 뭐냐?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게 우선이다.
예수님 앞에 이 나병환자가 찾아왔잖아요. 그리고 무릎을 꿇었잖아요. 그리고 달라고 청했잖아요. 이 과정이 행복을 얻는 과정이다. 영혼의 욕구를 채우는 과정이다. 우리는 다가가고 무릎꿇고 청하는 것만을 하면 된다. 나머지는 예수님이 다 주시는 거다. 그런데 다가가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고 그러면 채워줄 수 없는거다. 우리는 육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아가지만 결과는 이 어리석은 농장주인, 또 큰물기를 잡고도 앙상만 뼈만 남긴 그 노인의 인생이 되어버리는거다. 육적인 욕구도 좋지만 우선 하느님의 의를 구하는 신앙의 삶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래야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하느님 나라를 얻을 수 있다. 오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는 참된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0230129
제1독서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2,3; 3,12-13
3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
그러면 주님의 분노의 날에 너희가 화를 피할 수 있으리라.
3,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